강호순
현장검증
강호순은 1969년 10월 10일 충청남도 서천군 출신입니다.
경기 서남부, 강원도정선, 경기도 안산서 일어난 연쇄ㅅㅇ 사건의 범인으로,ㅈ인 여성 중 확인된 것만 10명입니다.
1969년 충청남도 서천군의 농촌마을에서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고향 인근에서 초중고를 졸업했습니다.
연쇄ㅅㅇ범들과 달리 강호순의 성장 과정에는
불우한 가정환경이나 폭력적인 학대가 없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엄격했지만, 이유 없이 체벌한 적이 없으며,
가정형편도 시골에서는 먹고 살 만큼의 전답을 부치고 살았고, 가족 간의 갈등도 없었다고 하는데요.
강호순의 행적 어디에서도 ㅅㅇ마가 될 특이사항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다만 실제 판결문에선 아버지의 가정폭력 사실이 있었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범행 기록입니다
경기 서남부에 여성 연쇄 실종 발생이 되었습니다.
2006년 12월 14일 노래방 도우미 배 모(당시 45세)씨가 군포시 산본동에서 실종되었으며.
화성시 비봉면 일대에서 배 모씨의 휴대전화 전원이 꺼졌습니다.
배씨의 시ㅅ이 2009년 발굴 당시 해ㄱ로 되어 화성시 비봉면 39번 간선국도 농림지대에서 해ㄱ 시ㅅ으로 발견되었습니다..
12월 24일에는 노래방 도우미 박씨(당시 37세)가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에서 실종되었습니다.
박씨의 휴대전화 또한 화성시 비봉면 서해안고속도로 일대에서 휴대전화 전파가 전원이 끊어졌는데
박씨의 시ㅅ은 넉달뒤 안산시의 야산에서 암ㅁ장된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2007년 1월 3일에는 회사원 박씨(당시 52세)가 화성시 신남동에서 실종되었으며
박씨의 휴대전화 역시 화성시 비봉면 일대에서 전원이 끊어졌다.
그리고 회사원 박모씨는 퇴근 후 수요 예배 교회에 가기 전 버스를 기다리다가 누군가가 납치 및 약취 유인후
성ㅍ행하고 신용카드 3장, 현금카드 2장을 절취 후 목ㅈ라 살ㅎ했으며 화성시 비봉면 삼화리 농림지대에 암ㅁ장했다.
1월 6일에는 노래방 도우미 중국 동포 김씨(당시 37세)씨가 실종되었으며 목ㅈ라 살ㅎ한 후
화성시 마도면 고모리 공터에 암ㅁ장했으나 현재는 화성 골프장 조경시설물이 들어서자 시ㅅ 발굴을
그 골프장조경시설 업체 매니저와 협의 후 중국 동포 김모씨 시ㅅ을 발굴할 예정이 었으나 유골 찾기가 어려워져 결국 중단을 했습니다.
1월 7일에는 성당에 간다며 나간 대학생 연씨(당시 21세)가 수원시 권선구 금곡동 버스 정류장에서 실종되었습니다.
연씨의 부모는 큰 딸이 귀가를 하지 않자 파출소에 미귀가 신고 하였고 경찰이 수색을 나섰으나 시ㅅ발견하기도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2008년 11월 19일에는 주부 김씨(당시 48세)가 수원시 권선구 당수동 버스 정류장에서 남편과 통화를 한 뒤 실종되었습니다.
주부 김모씨의 시ㅅ은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성포동 야산 일대에서 누군가에 의해 목 졸려 살ㅎ되어 알몸으로 발견되었습니다
2008년 12월 19일 오후 15시 07분쯤 대학생 안(19세)씨가 경기도 군포시 산본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군포보건소 정류장에서 내려 보건소에 들른 뒤 실종되었습니다.
오후 3시 37분쯤 안씨의 휴대 전화가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 일대에서 꺼졌으며,
오후 19시 28분쯤 안산시 상록구 성포동에 있는 현금 인출기에서 안씨의 신용카드로 현금 70만원이 인출되었습니다.
CCTV에는 마스크와 더벅머리 가발을 쓴 남자가 안씨의 카드로 현금을 인출하는 모습이 찍혔습니다.
실종된 여대생을 ㅅㅇ하고 피해자의 카드로 돈을 인출하려다 덜미가 잡히자 자신의 승용차와 모친의 차량도 불태워 되레 의심을 키우고 말았고, 결국 경찰에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붙잡힐 때만 해도 얼굴을 가리는 등 신원공개를 하지 않았으나, 여론이 비난하는 분위기로 가자 얼마 후 공개했습니다.
경찰에 붙잡히고도 "증거 가져와라."라며 결사적으로 부인 했지만, CCTV에 비친 얼굴과 희생자에게 나온 DNA 검식 결과 범인으로 확정, 그간의 악행이 세상에 드러나게 됩니다.
평상시에는 멀쩡하게 생긴 얼굴이라 결혼도 여러번 했고 . 범행 대상 중 6시간 동안 차에 감금되었다 살아난 40대 여성 피해자의 증언에 따르면 첫인상은 상당히 순진하고 순박한 축산업자의 느낌이 강해서 속아 넘어가기 쉬웠다 합니다. 같이 일하던 동료에게 '난 멀쩡하게 일하면서 살긴 힘들고 여자 등 치는게 제일 쉽다'라는 말을 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 동네 친구의 말에 따르면 심각한 여성 편력으로 결혼한 상태에서 주위에 소개팅을 주선해달라고 조르며 실제로 많은 여자를 만나고 다녔다고 하네요.
하지만 4번째 아내와 장모 앞으로 거액의 생명보험을 든지 얼마 안돼 그들을 방화로 살ㅎ 했으며, 보험금 4억에 달하는 재산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범죄심리학과 교수의 말에 따르면 강호순의 본질은 숙련된 보험사기범이라 합니다.
강호순의 행적을 따라가다가 밝혀진 추가범행으로는 2006년 9월 강원도에서 실종된 정선군청 여직원 윤모(당시 23세)씨도 살해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공식적으로 첫번째 희생자이다. 윤씨의 오빠는 경찰이 되었다고 하는데. 인터뷰 내용중에 "강호순을 만나게 된다면 딱 이 한 마디를 전하고 싶어요. 너는 아무 죄없고 알지도 못하는 내 동생을 죽였지만 나는 경찰이 되어서 네 가족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개를 키우는 농장을 했는데 농장에서 키우던 수십 마리의 시베리안 허스키를 추운 겨울에 먹이도 주지 않고 동사 시켰다고 합니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에게는 좋은 사람으로 생각되도록 철저하게 위장하며 살아온듯 하며. 엄인숙과 마찬가지로 주위에는 매우 좋은 인상을 주었다합니다.. 그냥 좋은 사람 정도가 아니라 철저히 신뢰를 쌓았고. 동네 주민들 중에는 강호순을 사위나 동생으로 삼고 싶을 정도로 싹싹하고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말이 많았다 합니다
하지만 밤이면 강호순은 에쿠스와 무쏘를 타고 희생양을 찾아 나섰으며. 주로 홀로 있는 여성에게 다가가 차를 태워준다고 하고 여성들을 데려가 강간후 목을 졸라 살해하고 암ㅁ장 했으며. 이때 희생자의 손톱을 가위로 잘라 자신의 혈흔을 남기지 않고 범행에 사용된 에쿠스와 무쏘를 소각하는 치밀함까지 보였습니다.
얼굴 공개에 대해서 "내 얼굴 공개되면 자식들은 어쩌라고?" 라며 항의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체포 이전 가족들 생활을 보면, 자식 교육에는 별 관심이 없이 적당히 용돈 주고 '너희들이 알아서 사 먹어라' 하는식으로 했다 합니다. 가족들에게도 별 관심 없었다고 보는 편이 맞을 듯 합니다.
2009년 4월 9일 검찰에 의해 사형 구형이 나왔다. 그리고 결국 4월 22일 수원지방법원 1심에서 사형이 판결되었으며,
항소심에서도 사형이 선고되었고 이후 상고를 포기하고. 사형이 확정되어 현재는 사형수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1997년 12월 30일 이후 사형이 실제로 집행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실질적인 사형 폐지국가이며.출소가 가능한 무기징역과는 다르게 사형은 죽을 때까지 나올수 없기 때문에 강호순은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던지. 사형이 집행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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